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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 Koo Bohn-chang 구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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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8-23 02:41 조회1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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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jpg
용기_154x123cm_2006

작업을 하다보면 우연히 접한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문장에서 새로운 테마를 발견하기도 한다. 백자라는 테마도 그렇게 한 장의 사진에서 태어났다. 1980년대 말 잡지에서 서양인 할머니가 큼직한 달 항아리 옆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항아리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이 할머니의 표정과 묘하게 어울려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이후 낡은 것 이라 여겼던 전통백자를 새삼 돌아보게 됐다. 당시 나는 한국을 떠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낯선 외국인과 함께 먼 타국에 있던 백자의 서글픔은 나의 가슴 깊은 곳을 움직였다. 그때는 사진에 찍힌 할머니가 누구인지 알 는 없었다. 단지 우리 백자를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백자가 먼 이국땅에서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느낌만이 남아 있다. 오랜 시간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백자는 15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 이번에도 역시 타국에서 나를 찾아왔다. 당시 교토를 여행하던 나는 일본잡지에 소개된 조선백자를 보고 오래 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 순간 나는 도록이나 박물관 안내서에서는 찾을 수 없는 우리 백자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혔고, 이것이 작업의 직접적인 시발점이 되었다. 게다가 그 당시에 나는 한창 탈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그 작업을 통해 전통문화를 달리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던 참이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백자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가까이 접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크나 큰 기쁨을 맛보았다. 조선시대 장인들의 멋스러운 절제의 흔적을 발견하는 매 순간이 즐거웠다. 백자를 촬영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와 긴 기다림을 거쳐야 했지만 박물관의 수장고에서 혹은 유리장 속에서 숨을 죽이고 수줍은 듯 기다리는 백자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늘 흥분이 앞섰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외국의 여러 박물관에서 우리 민족의 숨결을 머금고 여유로운 빛을 발하는 문화유산, 백자를 보며 자랑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기와 달리 저마다 하나하나 다른 손맛을 간직한 인간적인 백자의 맥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어졌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도 생겼다.

One coincidental photograph, one sentence that we happen to read, all these encounters multiple while working, to spark off new discoveries in themes. My work on porcelain vessels began in this manner. In the 1980’s I came across a photograph of an European elderly lady sitting next to a large moon jar. The traces on the jar of years gone by harmonized in a strange wat with the facial expression of the elderly lady. Since then I began to re-examine Korean porcelain which in the past I simply thought of ad being ancient and traditional. At the time I did not reside in Korea. Was that reason enough to fing an attraction for the Joseon porcelain. The sadness of the porcelain jar in a foreign environment next to a foreign person moved my heart deep inside. At the time I had no idea of who the elderly lady in the photograph was. Only the fact that the Korean porcelain jar was in the possession of a foreign woman and that the jar appeared ad though it was crying out for redemption, waiting to be taken back to ot birth land. Many years passed by after that experience and 15 years later again in a foreign place, it came back to me. I was traveling in kyoto, Japan and in a Japanese magazine there was an article on korean porcelain jars. This brought back my memories on the image that I saw years ago. At that moment, I felt a strong desire to portray the dignity transmitted by the porcelain jars that I saw in exhibition brochures and magazines. Futhermore it coincided with my work at the time in taking photo-images of ancient Korean masks. I was re-interpreting traditional culture through them and for this reason I became attracted to the porcelain jars. I think that I have been rewarded with an enormous privilege already Just by the fact that through my work I had the opportunity to see and touch many of these beautiful porcelain jars. Every time that I discovered the temperate nature of the Joseon craftsmen, I become overjoyed. The experience of photographing porcelain jars was not easy. The procedures were often complicated with long waits. A lot of the times I had to visit museum storage rooms, waiting and waiting. Shooting through window glasses, holding my breath, waiting again to become acquainted with the porcelain jars. Yet each time I was excited. I was avle to see these precious cultural objects, hidden from the general public, stored in world’s renowned museums. I was proud of them. Unlike the ceramics if China or Japan, everyone of them had their own character with a humane touch. My hope is connect the joseon porcelain line with contemporary developments in the Korea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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